설교 구조 흐름도
서론
믿음의 공동체
조건 없이 믿음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
회사·군대·학교와 다른, 자격도 계획도 없는 공동체
바울 소개
믿음으로 나아간 사람, 바울
다메섹 회심 — 자기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개입
마게도냐 환상 — 계산이 아닌 인도하심을 따른 걸음
행 9:1-6 행 26:9-11 행 16:6-10
배경
바울과 에베소, 하나님이 인도하신 관계
2차 짧은 방문 → 3차 2~3년 체류 → 밀레도 작별 → 로마 감옥
유대인·이방인 정체성 혼란 속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행 19:8-10 행 20:36-38 엡 2:11-12
본론 1
우리는 죽었던 자들이었다
네크로스(νεκρούς) — 완전히 멈춘 상태
세 가지 지배: 세상 풍조, 공중 권세, 육체 욕심
"우리도 다" — 유대인·이방인 동일
엡 2:1-3
본론 2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셨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 전환점
함께(συν) 살리셨고 · 일으키사 · 앉히시니
괄호 삽입구: 바울의 감탄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 2:4-7
본론 3 — 핵심
믿음은 선물이다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 우리의 선택이 아님
은혜가 믿음을 낳고,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엡 2:8-9
중간 포인트
믿음은 하나님의 감동으로부터 온다
데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 —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네샤마(נְשָׁמָה) → πνοὴν — 같은 어근 πνε-(프네)
창조의 숨결 = 말씀의 감동, 같은 뿌리
딤후 3:16 창 2:7
적용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여기고 계십니까?
선물을 귀하게 여기면 삶의 활력과 전환점
감동 → 믿음 → 선물, 이 연결을 확신하는가
엡 2:8-9
결론
우리 자체가 선물이다
포이에마(ποίημα) —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우리,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이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이미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엡 2:10
서론 / 바울 소개
배경
본론
핵심 본문
중간 포인트
적용
결론
서론 믿음의 공동체

믿음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 — 회사·군대·학교와의 대비. 모든 관계에는 조건이 있지만 교회에는 아무 조건도 자격도 없다. 오직 믿음으로 모인 공동체.


바울 소개 믿음으로 나아간 사람, 바울
① 다메섹 회심
사도행전 9:1-2 / 26:9-11 / 9:3-6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던 사람 → 하나님이 그 길 위에서 멈추게 하심 → 그리스도의 사람이 됨

자기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개입하신 것. 이것이 믿음의 시작.

② 마게도냐 환상
사도행전 16:6-10
아시아 선교를 막으시고 유럽(마게도냐)으로 인도하심

바울의 계산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믿음에는 자신의 계산이 들어있지 않다.


배경 바울과 에베소, 하나님이 인도하신 관계

2차 전도여행 귀환 중 짧은 방문 →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오리라" → 3차 전도여행 2~3년 체류(행 19:8-10) → 밀레도 작별(행 20:36-38) → 로마 감옥에서 편지

에베소 교회: 유대인·이방인 혼합 공동체, 정체성 혼란. 바울의 질문: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가"


본론 1 우리는 죽었던 자들이었다
에베소서 2:1-3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죽었던" = 네크로스(νεκρούς): 완전히 생명 기능이 멈춘 상태. 세 가지 지배(세상 풍조, 공중 권세, 육체 욕심). "우리도 다" — 유대인·이방인 동일하게 진노의 자녀.


본론 2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셨다
에베소서 2:4-7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그러나 하나님이" — 전환점. 함께(συν/쉰)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앉히시니. 괄호 삽입구: 바울의 감탄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고대 사본에 괄호 없으나 문법 구조상 삽입구.


본론 3 — 핵심 믿음은 선물이다
에베소서 2:8-9 (핵심 구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 우리의 선택이 아님. 은혜가 믿음을 낳고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 중간 포인트 — 믿음은 하나님의 감동으로부터 온다

은혜는 결과론적 단어 → 바울의 용기는 어디서? → 말씀을 감동으로 받는 마음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감동" = 데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God-breathed)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기" = 히브리어 네샤마(נְשָׁמָה) → 70인역 πνοὴν(프노엔) → θεόπνευστος와 같은 어근 πνε-(프네, 숨/바람). 창조의 숨결과 말씀의 감동이 같은 뿌리.

우리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존재. 바울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 감동으로 살 수밖에 없다.


결론 우리 자체가 선물이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우리 자체가 선물. 감동받아 살아가는 것이 곧 믿음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 가운데 살아가는 것.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그것이 이미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그 감동을 느끼신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믿음

본문: 에베소서 2:8-9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놀랍게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하지만 믿음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의 지체가 되었다고도 표현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상황들, 그런 모습으로 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만났으며, 믿음으로 함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특별한 관계입니다. 어디서도 믿음의 공동체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지요. 군대는 무작위로 사람들이 모이지만 강한 훈련으로 다듬어져가는 공동체이지요. 학교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배움이라는 매개체로 나아가는 공동체이지요. 모든 관계들이 어떤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 공동체인 우리에게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어떤 자격이나 계획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일 뿐입니다.

· · ·

그러한 믿음으로 나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에베소서를 쓴 바울입니다. 바울의 믿음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건을 위해서 노력해서 얻은 믿음도 아닙니다. 전도여행을 다니기 위해서 특별한 공부를 마치고 모든 것을 이수한 후에 자격을 얻어낸 믿음도 아닙니다.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믿음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바울(사울)은 본래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바울(사울)이 스스로 대제사장에게 찾아가 공문을 요청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 했습니다(행 9:1-2). 바울(사울) 자신도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성도를 옥에 가두고, 죽일 때에 찬성 투표를 하고, 회당에서 형벌하며, 심지어 외국 성까지 쫓아가 박해했다고 합니다(행 26:9-11). 자신의 계획이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길 위에서 바울(사울)을 완전히 멈추게 하셨습니다(행 9:3-6).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자기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믿음으로 나아간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도 그랬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이 아시아 지역으로 가는 것을 막으시고 유럽으로 떠나게 하셨습니다(행 16:6-10). 바울의 생각으로는 아시아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그 부르심을 따랐습니다. 2차 전도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했던 바울의 계산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걸음이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걸음은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자신의 계산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 · ·

그런 믿음의 소유자 바울에게 에베소는 우연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특별한 관계입니다.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에 처음 들렀던 날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에베소에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바울의 일정상 떠나야만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막으셨던 그 아시아 지역에 결국 바울이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은 무려 2~3년의 시간을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의 사역과 말씀 훈련을 이어갔습니다(행 19:8-10). 바울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에베소에 돌아온 결과, 에베소를 넘어 아시아 전 지역에 복음이 퍼져나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로마로 향하던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껴안고 울며 깊은 정을 나누었습니다(행 20:36-38). 그리고 그 길로 로마 감옥에 갇혀 더 이상은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에베소 성도들에게 쓴 편지가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의 DNA를 심어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들어간 에베소이지만, 사실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함께 섞여 있어서 서로의 정체성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할례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았고, 이방인들은 "나는 과연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인가"하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데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가"

· · ·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우리는 이미 죄로 인해서 죽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었던"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네크로스(νεκρούς) — 단순히 죄로 약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생명 기능을 다한 멈춘 상태

그런 우리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그 가운데서 우리는 스스로 뭔가 해보겠다고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을 향해 나아가며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그들만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 ·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 네크로스(νεκρούς)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크로스(νεκρούς) 상태에 있는 우리,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보는 성경 본문에 괄호가 나오면서 바울 스스로 감탄하며 선포하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사실 고대 헬라어 사본에는 괄호라는 문장부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문의 문법 구조를 보면 이 부분이 4절부터 7절까지 주 문장 흐름 가운데 갑자기 5절 끝 부분에 느닷없이 끼어든 문장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현대 번역자들이 괄호를 넣은 것입니다. 보통 문장 흐름 속에 갑자기 자기 마음의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잘 없는데,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무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리고 이어서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라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줍니다.

누가 하셨다고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에게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 · ·

그러면서 오늘 본문입니다. 에베소서 2:8-9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8-9 (핵심 본문)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바울이 행하였던 일들을 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에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갔더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셔서 환경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8절과 9절로 해석해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은혜에 의하여! 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은혜 받았다고 할 때 우리는 사람에게서 은혜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경험할 때 하나님이 누구누구를 통하여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는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고자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은혜가 믿음을 낳고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 · ·

그러나 은혜는 결과론적인 단어입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갈 때에 그 길이 은혜의 길인지,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게 무지한 상태에서 선택한 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런 경험을 한 후에 나중에 돌아보며 이것이 은혜였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미리 선포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울처럼 그런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용기, 나의 노력과 계획을 내려놓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갖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표현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에게 감동입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감동으로 찾아오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라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도 그 감동을 느끼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의 "감동" = 데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 —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God-breathed)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의미, 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입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 히브리어 네샤마(נְשָׁמָה) — 하나님이 직접 불어넣으시는 생명의 숨결
→ 70인역 헬라어: πνοὴν(프노엔)
→ θεόπνευστος와 같은 어근 πνε-(프네, 숨/바람)
창조의 숨결과 말씀의 감동이 같은 뿌리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불어넣으시는 생명의 숨결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져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땅을 살며, 모든 환경과 상황 속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아닌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뤄진 삶, 그래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입니다. 바울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매번 그 감동을 확신하지 못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감동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뤄졌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 · ·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감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감동이 이제 무엇으로 말씀 가운데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시작된 것이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선물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그 선물의 가치가 많이 달라집니다. 선물을 귀하게 여긴다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큰 활력이 되고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상대에 대한 신뢰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그저 인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물, 믿음을 어떻게 여기고 계십니까?
· · ·

하나님의 감동으로 충만한 바울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고 그 선물인 믿음으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감동으로 만드신 우리,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시고 그 감동으로 이끄신 우리, 그래서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으니 우리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숨결로 만들어진 사람, 그런 하나님의 감동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자체가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물을 받은 자로 감동받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믿음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그것이 이미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그 감동을 느끼신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 믿음입니다.

100%
© 서울광염교회 | Seoul Light and Salt Church | 설교작성 이인수 (insoo@sls.or.kr) | ver.2026041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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